글
꿈
끼익대는 마룻바닥과 조그마한 나무 책상, 덜컹거리는 의자.
아마, 내가 다녔던 학교 같다.
뒤통수가 지끈거리는 기분 나쁜 두통을 뒤로한 채, 주위를 둘러보니 누군가 내 옆에 앉아있었다.
.. 흐릿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허나 입고 있는 옷과 작은 체구, 그리고 살짝 봉긋한 흉부에 내려오는 긴 생머리로. 나는 내 옆에 이 인물이 여성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마치 웃는 것 같았다.
그녀는 미소지으며, 이제 곧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일단 내 몸을 확인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
마치, 심전도 검사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에 전극이 붙어 있었다.
전라의 상태이지만, 이상하게도 수치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작아진 체구,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커져있는 음경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시작할게.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책상 위에 작은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왔다. 고통에 순간적으로 눈을 꼭 감았다.
두통이 멎을 때쯤, 눈을 떠보니 아까와는 다른 서양식 인테리어로 꾸며진 방이 보였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서있는 그녀가 있었다.
기괴할 정도로 뒤틀린 투명한 몸, 곳곳에 길게 튀어나와있는 촉수, 뻥 뚫린 안면.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손 끝의 촉수가 다가와, 내 얼굴을 휘감는다.
차갑고, 축축하고, 미끈미끈해.
아
...

추억
" .. 뭐 하냐? "
승환이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었다.
"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엔 너도, 나도. 그 조그마한 손으로 이걸 크게 움켜쥐었었지. "
" 그랬었지.
.. 그땐, 그냥. 모든 게 즐거웠는데 말이야. "
그는 머금은 담배 연기를 내쉬고, 얼굴을 찡그리면서 내게 물었다.
" 너. 설마 아직도 후회하고 있냐..? "
나는 승환을 보며, 말 없이 입꼬리를 올리고 끄덕였다.
" 하.. 야, 이 새끼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병수 그 괴물 자식이 그냥 존나
잘 때린거지. "
" 하지만, 그때 네 사인대로 체인지업으로 던졌으면.. "
" 풉.. 아니어도 박병수, 그놈은 홈런 때렸을 거다. 그 녀석, 미국에서도 4할 때리고 있더만.. "
승환의 말을 끝으로, 둘의 어색한 침묵은 길게 이어졌고.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승환이었다.
" .. 참, 그.. 하.. "
승환은 처한 상황이 짜증 나는 듯,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어대었다.
" 형님이 시킨 거지? "
" 그래, 너 담그란다. "
" 큭큭, 그럴 거 같았어. "
" 하.. 씨발, 그러니까 약엔 손대지 말라니까.
병신 같은 새끼 같으니라고.. "
" .. 승환아, 나 생각해봤다?
서태구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그날 여름, 그 야구랑 같이 끝났던 거야.
이젠. 그냥, 지친다. 조직생활도, 약쟁이 삶도. "
" .. 그러냐. "
" 병신새끼. 왜 우냐? 너랑 하나도 안 어울려 인마.
그냥.. 그때처럼 시원하게 웃어, 아무것도 생각 안 해도 됐던 그 여름처럼. "
.
.
" 캬~ 승환아, 오늘 날씨 참 좋다. 씨발, 개 좆같은 야구나 보러 가자! "
" 그래. 보러 가자, 좆같은 야구. "

근황

저는 보잘것없는 한심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항상 죽고 싶다. 고 생각합니다.
베개가 낮은 탓인지, 자는 자세가 나쁜 탓인지,
매일 아침, 절 괴롭히는 두통이 최근엔 꽤 힘이 듭니다.
쉬는 날엔, 잠에 취해 멍한 정신으로 나와 담배를 물고 생각에 잠깁니다.
.. 잘 생각해 보니, 생각에 잠긴다기보단, 멍 때리거나 한심한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외계인이 납치해 간다던가, 트럭에 치여 새로운 삶을 산다던가.
전 지옥이나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윤회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믿진 않습니다.
제가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이 아무것도 없는 ' 무(無) ' 그 자체라 생각하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천국이나 지옥, 혹은 윤회를 믿었다면, 죽는 게 조금 더 쉬웠을까, 싶습니다.
..
.. 그래도 역시 죽는 건 많이 무섭습니다.
후지타 오사무 - 도화의 꽃
1
아버지가 27살, 어머니는 18살일 때.
나를 낳았다고 한다.
어릴 적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8살이 된 해,
우리 집 모든 가구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작고 예쁜 빨간 스티커가 붙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하던 일에 대해 딱 한 번 물어보긴 했지만,
무슨 일인지 내게 정확히 설명해 주시지도 않으셨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사채꾼들을 피해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다.
어머니는 버려진 사실을 부정하며,
아버지는 꼭 돌아오실 거라고 믿었지만.
결국 어머니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에게 버려졌음을 깨달았다.
남편이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수많은 빚,
아버지의 실패를 어머니에게 돌리는 친가.
너무나도 가난해 도움을 줄 수 없는 외가.
기댈 곳 없는 어머니는 결국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해, 종교에 기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종교가 아닌,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는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
어머니는 쾌락에 빠져 교회의 수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고,
이내 집에까지 남자들을 데려와, 내가 보는 앞에서 서로의 몸을 탐했다.
흔들리는 커다란 유방과 들썩거리는 허리, 음문에서 서서히 나오는, 모르는 남자의 음경.
유일한 보금자리였던 세 평 남짓한 공간은 땀과 신음, 애액과 정액으로 매일 더럽혀졌다.
나중엔 나에게도 손을 댈까 무서워, 건너편 아파트의 놀이터에서 아침 될 때까지 있다가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되었고,
나는 이것이 평범한 사람의 삶인 줄 알았다.
.
.
.
얼마 안 가 어머니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죽었다.
별로 슬프진 않았다.
섹스에 미쳐서 딸이 굶든 말든 신경도 안 쓰던 년이었으니.
그저 저걸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막막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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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고 싶어

.
.
.
매일 취하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술을 들이켜고 싶어.
제정신으로 살아가기에는
내 이 마음은 너무나도 한심하고 나약해.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즐기고 싶을 뿐인데.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행복을 바라는 건 너무 양심이 없는 걸까.
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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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philia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땀에 흠뻑 젖어 축축해진 캐미솔과 브래지어를 벗으며 본 창문 밖은
어두컴컴한 새벽이었다.
.. 사실 아침이든 밤이든
창문 밖은 항상 어둡다.
하늘에 해는 사라지고, 달만이 남겨진 지 벌써 석 달째,
지금이 언제인지 구분할 수 없음에도,
새벽인지 알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이 상황에 익숙해진 탓일까?
...
속이 메스껍다.
두 번 다시는 창문 밖을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벗은 속옷을 들고 침대에서 일어나,
탁자 위에 있는
턴테이블의 강아지 그림에 입맞춤을 한 뒤,
제일 아끼는 노래를 틀었다.
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소리와 노래가 어우러져 꽤나 운치가 있었다.
벗은 속옷들은 빨래 바구니에 넣고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욕실로 가니,
가 있었다.
...
피범벅이 된 채 실오라기 하나 없이 욕조에 누워 있는 는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하염없이 쳐다보게 되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의 몸은 차갑고 딱딱해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차가운 몸은 날 뜨겁게 만들었다.
...
이 일그러진 애정은 이내 가장 상스러운 행위로 발산되었다.
몇 시간에 이어진 수음 행위는 다시 온몸을 땀으로 뒤덮었다.
입김과 교성, 땀과 조수가 가득 찬 내 작은 천국은
다른 이가 보기엔 지옥이나 다름이 없으리라.
...
어지럽다.
머리도 말리지 않고 가운만 걸친 채, 침대에 엎어져 누웠다.
쭈글쭈글해진 손가락을 보니 방금 전 상황이 떠올라 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거울으로 보진 않았지만, 필시 홍당무가 됐을 테지.
낯부끄러운 일이 끝나니 한 순간에 피곤함과 나른함이 몰려왔다.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속앓이

누군가와의 대화가 두렵다.
눈을 마주 보는 것이,
선택을 강요 받는 것이,
내 대답을 원하는 것이,
그 기다림의 침묵이,
내 짧고 멍청한 생각이
무시 당하고 비웃음 받는 것이 두렵다.
그렇기에 더욱 입을 굳게 잠군다.
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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